한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카세트테이프를 뒤집고, CD를 플레이어에 넣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음악은 단순히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꺼내고, 닦고, 넣고, 다시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함께하는 취미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황금기가 바로 **MiniDisc(MD)**였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음악을 듣습니다. 검색하면 몇 초 만에 원하는 노래가 나오고, 플레이리스트는 자동으로 만들어집니다. 편리함만 놓고 보면 지금이 최고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다시 MD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MD 관련 카페에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왜였을까요?
사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음악을 듣는 재미보다 음악을 준비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LP에서 카세트, 그리고 MiniDisc까지
LP는 커다란 재킷을 펼쳐 놓고 음악을 감상하는 시대였습니다.
카세트는 직접 녹음해서 친구에게 선물하고, 워크맨을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MD는 그 두 세대의 장점을 모두 품은 마지막 아날로그 감성의 디지털 매체였습니다.
크기는 손바닥만큼 작고, 케이스가 있어서 스크래치에도 강했습니다.
CD보다 휴대성이 뛰어났고, 카세트처럼 직접 녹음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녹음한 뒤에도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당시에는 정말 혁신적인 기기였습니다.
MP3가 나오면서 음악은 편해졌지만…
MP3가 등장한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몇 백 곡의 음악을 작은 플레이어 하나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음악은 더 이상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접속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음악을 듣기 위해 해야 했던 모든 과정이 사라졌습니다.
앨범을 고를 필요도 없고,
디스크를 넣을 필요도 없고,
재킷을 펼쳐볼 일도 없습니다.
편리해졌지만…
음악과 함께했던 의식 같은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음악을 듣기 위한 성스러운 절차
요즘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음악 한 곡을 듣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꽤 많았습니다.
LP를 꺼내 먼지를 털고,
턴테이블 바늘을 조심스럽게 올리고,
끝나면 다시 뒤집어야 했습니다.
카세트는 원하는 곡을 찾기 위해 빨리감기를 하고,
조금 지나쳤다면 다시 되감기를 해야 했습니다.
CD도 케이스를 열고 디스크를 넣고 트레이를 닫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MD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케이스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플레이어에 넣고,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디스크가 들어가는 감촉을 느끼고,
잠시 TOC를 읽는 시간을 기다린 뒤 음악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그 번거로움 덕분에 음악 한 곡이 더 소중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음악을 듣기 위한 성스러운 절차’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MD만의 녹음 방식이 주는 즐거움
MiniDisc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기기가 아니었습니다.
직접 만들어 가는 매체였습니다.
CD 플레이어와 광케이블을 연결해 광녹음을 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되기 때문에 음질 손실이 거의 없었고,
녹음이 끝나면 TOC를 저장하면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끝나야 비로소 하나의 MD가 완성되었습니다.
나만의 앨범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만의 컴필레이션 앨범
좋아하는 곡만 모아 한 장의 MD를 만드는 일은 작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았습니다.
첫 곡은 분위기를 잡아야 하고,
중간에는 템포를 조금 올리고,
마지막은 여운이 남는 곡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지금의 플레이리스트와 비슷하지만 느낌은 전혀 다릅니다.
손으로 만든 플레이리스트였으니까요.
녹음 후에도 계속 편집할 수 있었다
MD가 놀라웠던 이유는 녹음이 끝난 뒤였습니다.
트랙을 둘로 나누기도 하고,
잘못 나뉜 부분은 다시 합칠 수도 있었습니다.
순서를 바꾸고,
삭제하고,
이름도 직접 입력할 수 있었습니다.
카세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기능이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작은 조그 다이얼을 돌려 한 글자씩 입력하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 시간이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SonicStage와 Web MiniDisc
세월이 흐르면서 MD도 컴퓨터와 연결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NetMD가 등장하면서 USB 케이블 하나로 음악을 전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니의 SonicStage 프로그램은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신기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Web MiniDisc라는 프로젝트 덕분에 최신 컴퓨터에서도 손쉽게 NetMD 기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 장비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 기술보다 열정이 더 오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SP, LP2, LP4 그리고 Hi-MD
MD에도 여러 녹음 모드가 있었습니다.
SP는 최고의 음질을 제공했고,
LP2는 녹음 시간을 두 배로 늘렸으며,
LP4는 네 배까지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Hi-MD가 등장하면서 1GB 미디어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데이터 저장도 가능해졌습니다.
당시에는 미래를 보는 듯한 기술이었습니다.
다양한 기기를 모으는 즐거움
MD의 세계는 플레이어 하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손바닥만 한 포터블 플레이어,
거실을 채우던 미니컴포넌트,
전문 녹음용 데크,
자동차 오디오에 장착되던 MD 데크까지.
브랜드마다 디자인이 달랐고,
버튼 감촉도 달랐으며,
음색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같은 MD를 넣어도 기기마다 개성이 느껴졌습니다.
배터리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다
MD를 오래 사용한 사람이라면 껌전지를 기억합니다.
길쭉하고 납작한 충전 배터리.
지금은 쉽게 구하기 어려워졌지만,
보조 배터리 케이스, 이른바 ‘보밥’을 이용하면 AA 건전지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럽과 북미 수출 모델 가운데는 처음부터 AA 배터리를 사용하는 제품들도 있었고,
오히려 지금은 그런 모델들이 실사용에는 더 편리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기기를 지금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작은 아이디어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PMD가 주는 또 다른 매력
일반 소비자용 MD 플레이어 외에도 PMD 같은 전문가용 녹음기도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공연을 녹음하고,
현장의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들입니다.
투박하지만 믿음직한 디자인과 뛰어난 녹음 성능 덕분에 지금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시장
많은 사람들이 MD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일본에서는 중고 시장이 활발합니다.
일본 옥션과 메루카리,
그리고 해외의 eBay를 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갑니다.
희귀한 한정판,
새것 같은 미개봉 플레이어,
단종된 리모컨,
순정 충전기,
박스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풀세트 제품.
보고 있으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밤늦게까지 경매 종료 시간을 기다리고,
마지막 몇 초를 남겨 두고 입찰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긴장감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그리고 ’낙찰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나는 순간의 기쁨은 꽤 오래 남습니다.
택배가 일본에서 출발해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하기까지의 기다림조차 하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디깅이라는 또 다른 취미
기기만 찾는 것이 아닙니다.
빈 MD를 찾고,
희귀한 미디어를 찾고,
설명서를 찾고,
부품을 찾고,
서비스 매뉴얼을 찾고,
어울리는 이어폰을 찾고,
잊혀진 음악을 찾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흔히 ’디깅(Digging)’이라고 부릅니다.
파고들수록 더 깊은 세계가 나타납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오래된 광고를 발견하기도 하고,
단종된 액세서리를 만드는 작은 업체를 알게 되기도 하며,
이미 생산이 끝난 부품을 누군가 3D 프린터로 복원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씩 정보를 모으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지금도 카세트는 살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카세트 역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몇 업체들은 새로운 카세트 플레이어를 생산하고 있고,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 활동하는 가수들도 한정판 카세트 앨범을 발매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음질 때문이 아닙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LP가 다시 유행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장하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느긋한 나이가 되어 즐길 수 있는 취미
젊었을 때는 새로운 것만 바라봤습니다.
더 빠른 기기,
더 큰 저장 공간,
더 편리한 기능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니 오히려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좋아졌습니다.
오래된 플레이어를 닦고,
배터리를 충전하고,
좋아하는 곡을 녹음하고,
라벨을 손글씨로 적고,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듣는 시간.
그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입니다.
조급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과 기계, 그리고 추억이 함께할 뿐입니다.
MiniDisc는 단순한 저장 매체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MD는 이미 끝난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 MD는 음악을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시절의 기억이며, 손으로 직접 완성해 가는 작은 작품이자, 지금도 새로운 기기를 발견하면 가슴이 뛰는 취미입니다.
스트리밍은 세상 모든 음악을 들려주지만, 그 음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없습니다.
반면 MiniDisc는 음악을 담는 순간부터 이미 나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가끔 일본 경매 사이트를 뒤져 보고, 오래된 플레이어를 살펴보고, 새로운 빈 MD를 발견하면 반갑게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음악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 자체를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아름다운 시대의 한가운데에는, 분명 MiniDisc가 있었습니다.

쉬운 말 풀이
데이터 컴퓨터가 읽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디지털 정보를 숫자와 신호로 바꾸어 저장하고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아날로그 연속적인 신호나 물리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스트리밍 파일을 내려받지 않고 인터넷으로 바로 재생하는 방식입니다.
스마트폰 전화, 인터넷, 사진, 앱 사용이 가능한 휴대용 디지털 기기입니다.
배터리 전기를 저장해 기기를 움직이게 하는 부품입니다.
충전 배터리에 전기를 다시 채우는 일입니다.
플레이리스트 듣고 싶은 음악을 모아둔 목록입니다.
음질 소리가 얼마나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는지를 말합니다.